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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하늘

월간하늘 창간준비호 표지


아마추어천문인 한마당에서 공개된 40권분량 만여장의 천문관련 신문 스크랩북. 이 작업을 중학교시절부터 시
작해 30여년동안 작업을 해오셨던 회원분 덕분에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의 <월간하늘>을 볼수있게 되었다.


 <월간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92년 부터 3년동안 발간되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잡지이다. 아래글은 편집부장을 하였던 이광식씨가 2013년에 <월간 하늘>에 대하여 쓴 글이다.

이 잡지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순전히 출판을 하던 나와 아마추어 천문가 박승철의 만남으로 비롯된 것이었다. <성운-성단 산책>을 쓴 걸출한 아마천이었던 박승철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가 남긴 <월간 하늘>은 이 땅의 많은 별지기들에게 아직까지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해 여름 우리는 서로 죽이 맞아, 수익성에서 도통 승산이 모호한 아마추어 천문 잡지를 창간하기로 하고, 나는 발행인, 그는 편집부장을 맡았다. 발행사 가람기획 이름으로 나간 창간 준비호는 1992년 8월에 냈고, 창간호는 9월에 세상에 선보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잡지 <월간 하늘>이었다. 누구는 잡지 제호 ‘하늘’이 너무 멋없지 않으냐, 밋밋하고 촌스럽다는 등 딴죽을 걸었지만, '하늘'이야말로 영어 ‘sky'와는 달리 ’얼‘과 '근원'이 담긴 우리말이라는 내 소신에 따라 붙여진 것이다. '하느님', '한울님'의 어원이 바로 '하늘'이다. 나는 지금도 우주라는 것은 과학만으로 접근할 대상이 아니란 믿음을 갖고 있다. 마음까지 열어야 비로소 우주를 온전히 맞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어쨌든 그 뒤로 적지 않은 쪽수의 잡지를 매달 때맞춰 내느라 얼마나 숱한 밤을 새었던가. 마감에 쫓겨 날밤 새기를 정말 헤아릴 수 없이 숱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밤에 틈틈이 마당에 나가 박 부장의 자작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곤 했다. 그때 출판사가 서울 근교의 마당 있는 단독주택을 사무실로 쓰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토성을 처음 본 것도 그 마당에서였다. 물론 사진으로야 토성을 수도 없이 보아왔지만, 정작 내 눈으로 본 밤하늘의 토성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아니, 저런 솥단지 같은 게, 팽이 같은 게 저렇게 하늘에 떠 있다니!... 토성이 수많은 아마천과 천문학자들을 배출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매호 1천~2천 부를 발행하던 잡지는 악전고투를 면치 못했다. 요즘은 천체 관련 사업체들도 많고 수입망원경 취급점도 많지만, 그때만 해도 업체들이 몇 개 되지 않아 잡지 광고 잡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단행본으로 애써 벌어들인 것을 매달 잡지에다 쏟아붓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잡지의 필진들을 보면 박승철을 비롯, 이만성, 조상호, 김상구 등, 당대 아마천 최고수들이었고, 따라서 이들의 글은 한국 아마추어 천문가의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내용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잡지의 제작 여건이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 발행인이 교정 보고 수정하면서 밤새기를 밥 먹듯 해도 적자를 메꿀 수가 없었다. 결국 중간에서 박승철은 소백산 천문대로 일자리를 옮겨갔고, 그 뒤를 천문학과 출신인 조재성과 정찬홍이 이어받아 잡지 발행을 계속해나갔지만, 누적되는 적자를 감당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져갔다. 3년을 발행하던 <월간 하늘>은 마침내 ‘휴간’을 내걸고 동면에 들어갔지만, 결국 그 동면은 영면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월간 하늘>의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그 3년 남짓의 여정은 말 그대로 고행이었다. 나의 40대 전반은 이렇게 밤하늘의 우주 속으로 증발되어 날아갔다. 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위안은 있다. 지금 활동하는 아마천들 중 많은 이들이 아직까지 <월간 하늘>을 기억하고 있으며, 개중에는 잡지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월간 하늘>이 최소한 한국 아마천의 토대를 다지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증좌 아니겠는가. 그리고 또, 돌이켜보면 지금 내가 망원경으로 우주를 산책하고, 더러 천문 관련 책들을 쓰고 하는 것도 20년 전 그 ‘악전고투’가 없었더라면 가능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점. 그래서 내가 <월간 하늘>을 한 것에 대해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것. 이 정도만으로도 그때의 고난은 벌충하고도 남을 거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박승철과의 만남은 내 인생의 한 변곡점이 되었다. 우리가 우주를 좋아하여 서로 만난 것이 큰 인연이었고, 그건 틀림없이 우리가 우주적인 사랑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었기에 가능한 인연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도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겨누면서 가끔 그때의 일들과 먼저 떠난 박승철을 떠올리곤 한다. 또 모를 일 아닌가. 우주로 돌아간 그와 우연히 망원경으로 시선이 마주칠는지도. ^^[출처] <월간 하늘> 이야기 (별하늘지기) |작성자 저녁바람
인터넷도 없는 천문자료와 정보가 부족하던 시절, 아마추어 천문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다양하게 활동여 발전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20여년전, 장비의 부족함은 열정으로 채우던 시절이였으리라. 점점더 심해지기만 하는 빛공해를 피해 어두운 하늘을 찾아 더멀리 떠나야만 하는 요즘과 비교하여 풍부한 하늘을 감상하던 때 이기도 할것이다. 나도 이천년 초반에 필름카메라로 천체촬영을 하였던 적이 두번 있었다. 천문연수를 마치고 따라간 가평 관측지에서 일주사진을 찍어보려고 노력 했었는데 결과물은 형편없었고, 소백산을 야간산행하면서 정상부근에서 촬영을 하였었는데 하산후 짐정리 도중 촬영필름을 죽-당겨버렸던 경험이 두번째이다. 그때 끈을 놓지 않고 천체관측에 입문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하늘들을 기억하고 있을것이다. 또 몇년후에는 지금의 하늘을 그리워 할지도 모르겠다.
잡지의 내용을 보면 읽을 거리도 많고 오래되었어도 오래된 느낌이 들지 않는것이 별이 늘 그대로 움직이고 있기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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